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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8호) 하늘의 별따기(7) (한국인 피폭자 원정부의 이야기)

관리자 2018-10-20 (토) 11:41 5년전 1899  

 高龍月


원정상(元貞常 : 원정부의 아버지)의 원폭투하 후 5일간의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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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6일 8시 15분 히로시마 시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었다.
그 날도 새벽에 발령되었던 경계경보는 이미 해제가 된 상태이었다. 나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아침식사를 마치고 자전거에 점심 도시락을 실고 아내의 배웅을 받으며 일터(미쯔비시 독크 현장)로 갔다. 벌써 노무반장 외 여러 명의 노동자들이 나와서 작업복을 갈아 입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원씨, 오늘도 잘 부탁해요. 수고하세요」
평소와 같이 일본인 사타케 노무반장이 힘차게 인사말을 나누었다.
일은 8시 반부터 시작이다. 15분의 여유가 있다. 집이 없는 조선인은 현장에서 투숙하고 있으므로 작업복 차림으로 맛있게 담배를 피우며 잡담을 나누고 있다.


나는 작업복으로 갈아입으려고 방에 들어가려고 할 때, 청명한 여름 하늘에 두 대의 비행기가 천천히 날아가고 있는 것을 보았다.
미국의 공습기는 이제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비행기가 날아온다. 그러나 오늘은 두 대뿐이다. 공습이 아닌 것 같다. 그렇다 해도 왠지 기분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때 한 대가 휙 돌아서 날아온다. 재빨리 휙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아침 태양을 받은 탓일까 번쩍하고 매우 강렬한 빛이 보였다. 나는 큰소리로 「비행기다!!!」라고 외치는 순간 귀가 날아 갈듯한 굉음이 들리고 밝은 아침이 갑자기 캄캄한 암흑으로 돌변했다.


붕~~몸이 하늘로 떠오르는 느낌이었는데, 강풍이 세차게 몰아간 듯했다. 10분정도 지나자 하늘이 조금씩 맑아지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은 건물 안에 있었던 탓인지 별로 큰 상처는 없지만 밖에 있었던 사람은 대부분 땅에 쓰러져 있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너무나도 큰 충격에 사람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말을 잃었다.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 것인지 이 상황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이해할 수도 없었으며, 모두들 본능적으로 죽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어둠속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려고 애를 썻다. 시내 쪽은 시커먼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갑자기 검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백주 대낮에 왠 비가 내리지? 싶었는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때 내린 검은 비는 원자폭탄 폭발로 인해 상층기류가 생겨 내린 비로 치명적인 방사능을 함유한 악성 죽음의 비였던 것이다. 동료들은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우왕좌왕하는데 현장감독이 개인행동은 하지 말고 회사에서 연락이 올 때까지 막사 안에서 조용히 있으라고 지시하면서 자기는 회사에 갔다 오겠다 면서 밖으로 나갔다. 두 시간여 지난 후 현장감독이 돌아와서는 ‘오늘은 꼼짝하지 말고 현장 막사에서 지내고 특별히 회사에서 어떤 지시가 있을 때까지 집에도 가지 말고 있어야 되고 만약에 여기서 이탈을 하면 엄중한 처벌과 함께 노임도 동결 한다’는 엄포를 하는 것이다. 이제는 집에 있는 어머니, 아내, 초롱초롱한 눈망울 아이들이 걱정이 돼서 좌불안석이 되었다. 사느냐? 죽느냐? 하면서 전전긍긍하든 하루가 지나갔다. 이튿날 아침 반장이 와서 「지금부터 주먹밥을 먹고 3인 1조로 시내로 나간다. 할 일이 있다. 시내는 집이 모두 무너지고 무너진 더미에 살아있는 사람들을 구출할 작업을 우리들이 한다. 알았나? 또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렇게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 히로시마는 지금 살아있는 사람보다 죽은 사람이 더 많다고 하니 큰일이 난 것 같다. 모두 열심히 해 주시오. 부탁한다.」


그리하여 우리들은 10분도 걸어가지 않았는데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히로시마의 마을이 없어진 것이다. 어디에도 마찬가지지만 콘크리트로 만든 건물이 마을 중심부에 있고 마을 교외에는 조용하고 회사를 다니는 회사원의 집들이 많이 있었다. 그 집은 대부분 목조건물이었다. 그 목조건물은 거의 다 무너졌고 시내의 콘크리트 건물의 잔해만 군데군데 남아있어 히로시마는 불바다로 되어 저쪽 산이 보일 정도이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얼마나 큰 폭탄이기에 한꺼번에 이렇게도 처참하게 파괴시킬 수가 있는 것일까? 세상에서 얼마나 큰 폭탄 한 발이 이렇게 만들 수 있는가? 이 세상에 수 천개, 아니 수만 개의 집을 일순간에 콩가루로 만든 폭탄은 과연 어떤 폭탄일까?
이렇게 무서운 광경을 생전 처음 본 나는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쭉 흘러 내렸지만, 세 사람의 책임자인 일본 사람은
「무너진 집 속에 사람이 있다. 나무를 치우고 사람을 구해 내라」는 지시가 내렸다.
분명히 무너진 집 속에 사람들의 신음소리가 들려온다. 
「이곳에 사람이 깔려 있다」
세 사람은 땀을 흘리며 무거운 나무를 걷어내기 시작했다.

「지금 구할 테니까 조그만 더 참으세요! 힘내세요!!」


기왓장을 몇 장이나 치우고 큰 기둥을 세 사람이 힘을 모아 겨우 들어 올려 치우고 창문이나 다다미 등을 치워 1시간 정도 걸려 드디어 60대의 노인을 끌어내었다. 그러나 얼굴 반 정도는 새까맣게 탔고 두 눈은 뜨지 못했다. 할머니이었고, 머리카락은 불에 타서 뽀글뽀글해졌고 이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을까? 도와주는 사람도 깜짝 놀랄 정도로 무서운 형상이다.

「이거 정말 큰일났다」


생각한대로 두 번째의 집은 5살 정도 되는 남자 아이를 구출해 냈지만 양다리가 부러져 일어설 수가 없다. 어떻게 할까. 바로 옆에 어머니라고 생각되는 여성이 온 몸에 유리조각이 박힌 채 죽어 있었다. 아~ 이 아이를 어떻게 할까? 마침 옆에 부상이 심한 여학생이 있어 그 학생에게 맡기고 다음 집으로 향했다.
이런 일을 반복해서 하는데 오늘 일을 마치니 힘이 다 빠진 채 조선소에 돌아와 보니 이틀 전까지만 해도 큰 목욕탕이 있어 몸을 씻으려고 했지만 물을 데우는 기계가 부서져 씻지도 못하고 주먹밥 두 개를 먹고 잠깐 누웠더니 그대로 잠에 빠져 들었다.
이틀째는 잿더미로 변한 시체를 리어카에 싣고 치우는 작업이었다. 아직 숨이 붙어있는 듯한 사람들도 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우리들도 거친 숨을 쉬고 있지만 고통만 심할 뿐 더 살 수 없는 사람은 차라리 고통을 단축시켜 주는 것이 그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판단되면 구덩이를 파서 묻어버렸다.


지옥세계에서 지옥 같은 일을 하고 있다. 발광을 하여 도망가고 싶은 심정을 억지로 억제하고 참혹한 일을 시키는 대로 묵묵히 하고 있을 뿐이다.
내 아내, 자식, 어머니는 어떻게 되었을까? 지옥 같은 일을 하고 있으면서 밤이나 낮이나 가족 걱정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당장이라도 도망가고 싶다. 마을은 잿더미로 변하여 어디가 어딘지 분간을 할 수가 없고 감독과 반장의 날카롭고 매서운 눈초리가 항상 뒤따르고 있다.
3일째부터는 조금이나마 마음의 여유가 생겼지만 한여름 더위 속에 시체에서 풍기는 지독한 냄새는 참을 수가 없고 또 피할 곳도 없다. 
떨어져 나간 한쪽 팔다리에는 구더기가 우글거리고 자신도 죽었다면 이럴 것이라고 생각하니 온 몸이 떨리고 극심한 공포심이 생긴다. 
4일째, 히지산(比治山)에 군부대가 있어 그곳으로 작업하러 갔다. 그날 아침에 산에 올라갈 때 텐마강(天滿川) 가까이를 걸어가고 있었다. 저 부근이 아들 정부가 다니던 텐마초등학교라면 집도 가깝다. 돌아갈 때 또 저 길을 지나간다면 잘만 도망치면 집에 갈 수도 있지 않을까?
히지산에는 아까츠키 부대가 있었다고 하는데, 중환자는 어딘가 데려갔는지 모습은 보이지 않고 부서진 목재를 정리하여 군인들의 숙사를 만든다고 하며 하루 종일 부서진 목재를 정리했다.
약간 푸른 나무는 남아 있어 시내보다 악취는 덜하고 시원한 나무 그늘 밑에서 조금 쉬고 있으니 더욱 처자 걱정이 되어 여기서 꼭 탈출해야겠다는 생각이 맹렬하게 솟아나와 억제할 수가 없다.
히지산에 올라가면 히로시마의 마을이 보인다. 저 근처가 텐마초등학교라고 하면 내일은 어디서 작업할지 모르지만, 목적지는 히로시마성이다. 히로시마성은 천수각이 날아가 버렸지만, 역시 큰 표적이다. 히로시마성까지 가면 어느 쪽이 텐마마을인지 그 위치를 머릿속에 꼭꼭 새겨 두었다.


그리고 5일째, 시체가 점점 강으로 흘러내려오고 있어 오늘은 강의 시체를 육지에 걸어 올리는 작업을 한다.
그러나 히로시마에는 강이 많다. 처음의 강은 모토야스(元安)강이라고 반장이 알려 주었다. 낮부터는 교바시(京橋)강으로 가서 작업을 한 뒤 저녁때쯤 오이타(大分)강의 하류에 왔다. 작업을 하면서 텐마강 방향을 대강 짐작해 두고 있었는데, 매일같이 저녁때까지 작업을 하고 있었다. 탈출하려면 컴컴해진 후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두워지면 작업을 중지시키니까 「모두 강에서 올라오라!!」는 호령이 떨어지기 직전에 물속에 잠수해야 한다. 그 다음은 물속을 잠수해서 건너가는 수밖에 없지만 저쪽 둑까지는 너무 거리가 멀다. 자~ 어떻게 할까? 고심하고 있을 때 마침 엘자 형의 철 파이프가 눈에 뜨인다. 옛날에 일본의 인자(忍者) 만화 속에 「수중에서 숨는 술법」으로 인자가 대나무 통을 입에 물고 수중에서 잠수하며 기다리고 있다가 적이 사라지면 도망가는 것을 읽은 적이 있다. 이 철 파이프를 대나무 통과 같이 사용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체를 치울 때도 이 파이프를 사용하고 있었지만 절대로 손에서 떼어놓지 않았다.


그날 저녁 무렵 6시반경에, 해가 서산에 넘어가려고 할 때, 나는 물속에 들어갔다. 감독, 반장, 동료들을 쭉 살펴보니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 것 같다. 얼른 잠수하고 철 파이프를 입에 물었다. 철 파이프로 숨을 쉴 수 있었다. 아~ 이제 괜찮다. 강 가운데 오니 발이 땅에 닿지 않는다. 나는 헤엄을 칠 줄 모른다. 할 수 없다. 강물 밑바닥을 걸었다. 숨이 차면 강물 위에 얼굴을 내밀고 숨을 마음껏 들이마신 뒤 또 강물 속으로 들어가 걸었다. 이렇게 3~4번 반복하는 동안에 수심이 얕아져서 편히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드디어 강둑에 닿았다. 그렇지만 바로 강둑위로 올라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30분 정도 숨어 있으면 어두워질 것이다.


나는 물속에서 한참동안 기다렸다. 힘들면 살짝 얼굴을 수면에 내밀고 저쪽 언덕을 보니 희미하게 보인다.

 「정렬」「점호」이름을 부르고 있을 것이다. 「그래, 조금만 더 잠수하고 있자」
다음에 얼굴을 수면에 내밀어 저쪽 언덕을 바라보니 보이지 않게 되었다.

「됐다. 지금이다!!」
언덕에 올라와서 먼저 의복을 벗어 물을 짜 내었다. 그리고 다시 그 축축한 의복을 입었다. 여름이기에 차갑지는 않았지만, 축축한 옷을 입으니 무겁고 걷기 힘들었다.
먼저 강가를 따라 올라갔다. 어느 정도 올라가서 이 정도에서 옆으로 가면 텐마 마을이 가까울 것이라 생각되어 다리를 건넜다.


또 강이 나온다. 그런데 이 강 위로 올라가야 하나 아래로 내려가야 하나 분간이 안 된다. 어쨌든 위로 올라가기로 했다. 한참동안 위로 올라가 보았지만 다리가 부서져서 건너갈 수가 없다. 다음 다리까지 걸어가면 산이 가까워진다. 안 되겠다. 아래로 내려가야겠다고 다시 내려갔다. 또 다음 강이 나온다. 이 강은 텐마강일까? 텐마강이라면 이곳을 올라가면 텐마초등학교가 나올 것이다. 텐마초등학교에 가면 그곳에서 우리 집은 7~8분이면 갈 수 있다.


그러나 그곳을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텐마강이 아니란다. 이렇게 6~7번 반복하기를 5시간이 지났다. 이리 저리 한참을 헤매다가 겨우 나의 집 같은 느낌이 드는 집 앞에 섰을 때는 이미 주위는 컴컴해졌고 만물이 깊은 잠에 빠져들 시각이었다. 
이렇게까지 집이 찌그러졌다면 모두 죽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내 집이 틀림없다는 직감이 든다. 지금 나는 갈 데도 없다. 이 집안에 다른 사람이 있다 해도 오늘 밤은 이 집에 신세를 져야 할 만큼 피로가 엄습해 왔다.
정상은 문이 부서져라 세차게 두드리며 큰 소리로 불렀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방 저쪽에서 불빛이 비친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저 불은 아내가 켠 불일 것이다. 만약 다른 사람이면 어떻게 할까?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으니 문을 열고 얼굴을 내민 사람은 바로 나의 아내와 어머니가 아닌가!!


한편 아내와 어머니도 오늘까지 5일째, 주위 상황을 보면 살아있다면 벌써 돌아왔을 텐데, 5일이 지나도 연락도 없이 돌아오지 않는 것을 보면 이제 단념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5일이 지나고 겨우 잠이 든 한밤중에 누군가가 문을 세차게 두드리며 「누구 계세요?」하는데 그 목소리가 분명 남편이라는 확신이 섰다.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얼른 촛불을 들고 문을 열자 5일 전에 집을 나선 남편과 전혀 다른 모습의 사나이가, 마치 산사나이 같이 엉성한 머리, 너덜너덜한 옷, 맨발의 남자가 서있는데, 그런데 남편의 냄새가 물씬 풍겨온다.
「여보!!」
 규하듯 큰소리를 지르며 더러운 옷도 상관없이 정상을 부둥켜안고 울부짖는다.
「여보!! 죽은 줄 알았어요. 죽은 줄 알았어요!!!!」
다음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저 기쁜 눈물만 줄줄 흐르고 있다.
「정상아, 살아 있었네!! 정말 다행이다!! 다행이다!!!~~」
어머니도 눈물을 흘리면서 아들을 얼싸안고 울기만 했다.

「매일 정부와 같이 너를 찾아 다녔단다. 이제 돌아오지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아아~~ 돌아왔구나, 돌아왔어, 정말 돌아왔네.」
이제 세 사람은 말이 필요 없다. 이렇게 불바다가 된 속에서 다시 살아서 만난 기쁨은 뜨거운 눈물만이 말을 해준다.
「건강한 모습을 아이들에게도 보여 주라」
할머니가 말했다. 그렇다. 그래. 세 사람은 집안으로 들어갔다. 아이들 넷은 푹 자고 있었다. 아이들 넷도 상처하나 없이 살아있는 자체가 기적에 가깝다. 정상은 내 아이들이 새근새근 잠들고 있는 그 모습에 새롭게 눈물이 북받쳐 오르지만, 배는 고프고 몸에서 냄새가 나서 밖에 있는 우물로 몸을 씻고 밥 먹고 나서 천천히 보기로 했다.


닷새 만에 더러운 몸을 씻었다. 살아 있다. 인간으로 살아 있다. 가족도 모두 살아 있다.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이 닷새 동안에 몇 천 명의 시체를 보아왔다. 이런 참혹한 지경이라면 우리 가족도 무사할 리가 없는 노릇이라고 반 체념하고 있었다. 그런데 모두가 살아있다. 나도, 내 가족도. 정상은 자연스럽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하하~~ 큰 소리로 웃어 보지만 눈물이 줄줄 흐른다.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수가 없다.
정상은 6일째 달을 보았다. 달을 보면서 두 주먹으로 눈물을 훔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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